
국내 기업들이 1400원대를 넘어선 고환율 속에 내년 사업계획을 세우지 못해 고심하고 있다. 달러당 원화 가치가 급락하면서 원자재 수입비용이 폭등하고, 환차손 위험이 커졌기 때문이다. 서울의 한 식품기업 재무담당 A 부장은 “환율이 10원만 변해도 영업이익이 수십억 원씩 출렁인다”며 “환율 3가지 시나리오를 전제로 계획을 짜고 있다”고 토로했다.

12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한때 1470원을 돌파했다. 지난 4월 이후 7개월 만의 최고 수준이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외환시장의 과도한 반응을 주시 중이며 필요 시 개입할 수 있다”고 밝혔다.
문제는 환율 상승이 장기화될 가능성이다. 이미 대부분의 기업은 내년도 경영계획 수립 단계에서 환율 리스크를 가장 큰 변수로 보고 있다. 부산의 한 선박 부품업체 대표는 “중국에서 달러로 철강을 사오는데 환율이 요동치면 원가 계산이 불가능하다”며 “내년 계획 자체가 무의미하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대한상공회의소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업 절반 이상이 올해 환율을 1350~1400원 수준으로 예측했다. 그러나 실제 평균 환율은 1414원으로, 기업 4곳 중 3곳의 전망이 빗나갔다. 전자업계 관계자는 “올해 환율 때문에 계획이 다 꼬였다”며 “내년도 불확실성이 더 크다”고 우려했다. 전문가들은 환율이 1400원을 넘어서면 경제 전반에 ‘위기 신호’로 작용한다고 진단한다. 신한은행 백석현 연구원은 “트럼프 2기 출범과 한·미 금리 차로 강달러 기조가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고환율은 업종별로 명암을 갈랐다. 무역협회에 따르면 환율이 10원 오를 때 수출기업 영업이익은 평균 0.5~1% 증가하지만, 수입 의존 기업은 1~1.5% 줄어든다. 조선·해운·자동차는 이익을 기대할 수 있지만, 석유화학·철강·식품업계는 원가 부담이 치명적이다. 특히 중소기업의 타격이 크다.

산업연구원은 “환율이 1% 오를 때 중소기업 영업이익률은 0.36%포인트 감소한다”며 “대기업보다 충격 흡수 여력이 훨씬 낮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고환율은 수출 효자 역할을 하던 시대가 지났다”며 “환 헤지 확대와 생산거점 다변화 같은 실질적 대응이 절실하다”고 입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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